명절특집입니다. 이번 중국 출장에서 2001년생 중국인 신입직원과 우리네 삶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결국 '혼자인 삶'에 대해 어떠한 주관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가 공감이 닿는 맥이더라고요. 특히 그 친구가 '영포티'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그렇게 살 수 있어 부럽다"라는 말에 살짝 아팠습니다. 결혼은 할 수 있을지 하는 푸념까지... 누구나 혼자인 삶. 명절, 가득한 친척들 사이에서도 혼자인 그대를 위해 특집편을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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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용] 영포티에게
경향신문 9월 30일자 칼럼__ 작성자: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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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씨, 얼마 전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못다 한 말을 글로 전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서먹해하고 긴장을 한 듯했지만 맥주 한 잔 마신 다음부터는 술술 말문을 풀더군요.
“열심히 일해서 몇년 전 운좋게 서울에 아파트를 사는 데 성공했습니다. 순조롭게 승진을 했고, 연봉도 만족스럽습니다.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콘서트에 가고, 패션이나 음식 기호도 확고해서 섬세한 취향이라는 평을 들어요. 교육비가 많이 들기 시작했지만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도 거르지 않습니다. 하프 마라톤을 뛸 정도로 운동도 제대로 합니다.”
이렇게 젊은 감각을 유지하며 사는 40대 초반이라고 자신하는데, 20대 후배들이 성호씨를 대하는 눈길과 태도가 거리감이 있어 서운하다는 얘기였지요. 또 하나, 같은 팀 20대 여자 후배가 잘 웃고 싹싹하게 대해서 살짝 내게 호감이 있나 생각한 적 있다고도 했지요. 지금은 결혼반지를 챙겨 끼고 다닌다면서.
성호씨가 바로 ‘영포티’라 불리는 세대입니다. 젊게 사는 중년을 지칭하는 용어였는데, 최근 2030세대에게는 겉으론 젊고 트렌디하려고 하지만 자기과시적이고 허세만 있는 중년, 나이 듦을 인정하지 않는 세대로 냉소적으로 소비되더군요.
왜 이리 영포티를 미워하는 걸까요? 약간의 부러움이 섞여 있어요. 영포티는 부동산 폭등기가 오기 전에 운좋게 아파트 구매에 성공한 사람이 많아요. 서울 ‘마용성’ 지역의 신규 매수자에 영포티가 많더라고요. 반면 2030세대는 집값이 뛰어버린 탓에 꿈도 꾸지 못하게 됐어요. 소득이 한창 최고조에 오르고, 와인·음악 같은 취향을 즐기면서 주거도 안정된 영포티를 보면 부러움이 없다고 할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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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저렇게 살고 싶은데 몇년 차이로 저 멀리 서 있는 걸 보니 얄밉지 않을까요. 갈등과 긴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억울해하기보다, 미안함과 인정의 태도가 필요할 듯합니다. 가까운 사이라 내 현재를 말했을 뿐이라 해도 자랑이나 잘난 척으로만 들리기 쉽습니다. 같은 편이라 여기고 불평을 하는 것도 배부른 소리로 비칠 뿐입니다.
그들과 어떡하면 친해질 수 있냐 물었죠. 이젠 포기해야 해요. 중년으로 이어지는 전환기가 왔으니, 이젠 제 쪽으로 넘어오세요. 중년은 ‘인생의 정오’라 하는데, 성취한 것이 많다면 오후를 맞는 마음이 가뿐할 겁니다.
‘친하게 가까이’ 말고 거리를 유지하세요. 2030은 사회적 미소로 웃으며 응대하는 것이지 개인적 호감이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라지 마세요. 내 직급이 높으니 고개를 끄덕이고 눈꼬리를 올려줄 뿐이에요. 잘못 해석해서 착각 서사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친근하고 격의 없이 대하지만 권위가 살지 않아 휘둘리는 선배가 되기보다 적당히 무섭기도 하고, 분명한 선을 지키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확실히 구분해주는 사람이 됩시다. 권위적인 것과 권위가 있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무섭지만 배울 게 많은 사람”이란 인상이 되는 쪽을 선택합시다.
후배 앞에서 살짝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세요.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큼 꼴불견이 없습니다. 저기압일 때 짜증낸 건 쉽게 잊지만, 후배들은 그걸 더 오래 기억해요.
저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민망했고, 거리감의 시선을 느꼈답니다. 젊게 보이려 애를 썼지만 나를 보는 시선은 이미 저 멀리 가 있다는 걸 한참 뒤, 50대 후반에야 인정했어요. 영피프티는 불가능. 피프티는 피프티예요. 그래서 영포티 성호씨에게 이 글을 드리는 겁니다.
중년이 되면 좋은 것도 많아요. 뒷자리로 물러나고, 후배에게 공을 돌리며, 기세보다 요령으로 일하게 되니까요. 무엇보다 모임에서 “이제 그만 일어납시다”라고 말할 권한이 생겼답니다. 얼마나 좋다고요.
나이 듦이 좋은 점도 많다는 걸 실감하는 스틸 피프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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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혼자 가도 좋은 '느좋' 공간
홀로 걸어봅시다. 쓸쓸하기보다 충만할거에요. 물론 곁에 있는 가족, 친지, 친구, 지인 모두와도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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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소란스러움에서 잠시 로그아웃하고 싶을 때, 우리는 기꺼이 고독이라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섭니다. 익숙한 풍경 속 낯선 고요함에 몸을 맡기면,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하는 온전한 시간이 펼쳐지죠. 여기, 당신의 명절을 풍요롭게 할 두 곳의 '느긋하고 좋은' 공간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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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톤즈 삼청점: 돌, 나무, 흙과 같은 자연의 물성을 고스란히 담은 공간에서 오롯이 차 한 잔에 집중하는 경험은 잊고 있던 감각들을 깨우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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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데이크 하우스: 고즈넉한 한옥의 서까래 아래서 아방가르드한 디저트를 맛보는 아이러니를 즐기며,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환상적인 순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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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닉 (전시: 힐튼 서울, 자서전): 하나의 건물이 사라지는 것은 한 시대의 기억이 소멸하는 것과 같지만, 이야기는 이렇게 예술로 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사라진 공간의 물건들이 들려주는 자서전을 읽다 보면, 어느덧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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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때로는 수천 년의 시간 앞에 홀로 서보는 것만큼 좋은 위로도 없습니다. 방대한 유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거대한 서사 속에서 잠시 나를 잃어버리는 충만함을 느끼게 되죠. 그 고요한 대화 속에서 나의 고민들은 한없이 작아지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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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수학의 힘 (오구리 히로시 저):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변수와 우연으로 가득 차, 때로는 거대한 혼돈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이 책은 수학을 계산이 아닌, 그 혼돈의 이면에 숨은 질서를 꿰뚫어 보는 냉철한 '사고의 언어'로 우리에게 제시하죠. 복잡한 문제 앞에서 길을 잃지 않고 최적의 선택을 내리는 지혜를 얻고 싶다면, 이 물리학자의 통찰이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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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난 국가 (이철승 저): 우리는 매일 밥을 먹지만, 그 쌀 한 톨에 한 국가의 운명을 뒤흔든 비극과 욕망의 역사가 숨어있다는 사실은 잊고 삽니다. 이 책은 쌀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생존의 문제를 둘러싼 국가의 통제와 개인의 투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추적하는 한 편의 서늘한 역사서입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당신의 밥그릇은 더 이상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 시대의 풍경을 담은 유물처럼 보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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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비틀기] 자기개발 - 왜의 쓸모
우리는 늘 이유를 대고, 핑계를 찾고, 무언가를 설명하며 살아갑니다. "왜 늦었어?"라는 질문에 우리는 수만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내죠. 그런데 혹시 우리가 대는 그 '이유' 자체가 사실은 진실이나 팩트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해보셨나요?
마침 이동진 평론가님이 소개한 찰스 틸리의 『왜의 쓸모』라는 책이 바로 그 지점을 아주 흥미롭게 파고듭니다. 사회학자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이 이유를 대는 방식을 4가지로 분류하는데, 이걸 알고 나면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AI 덕에 종이책에 대한 몰입감이 더 깊어졌어요.
우리가 이유를 대는 네 가지 방식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이유'에는 크게 네 가지 메뉴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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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 (Convention): 가장 흔한 이유죠. 동료의 서류에 커피를 쏟았을 때, "어머, 죄송해요. 제가 좀 덤벙대서요"라고 말하는 것. 이게 바로 관습입니다. 진짜 이유가 내가 덤벙대서인지, 어젯밤에 잠을 설쳐서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상황을 부드럽게 넘기고 "당신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니, 우리 관계는 계속 유지합시다"라는 사회적 신호를 보내는 게 핵심이죠. 일종의 '사회적 윤활유' 같은 핑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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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Story): 소설가로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해고나 사고처럼, 우리의 일상을 뒤흔드는 예외적인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원인을 단순화하고, 선과 악을 구분하고, 교훈을 담아서요. 이 혼란스러운 현실을 이해 가능한 서사로 바꾸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인 셈이죠.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서술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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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Code): 이건 좀 더 권위적인 이유입니다. 판사가 법 조항을 근거로 판결을 내리거나, 의사가 진단 기준에 따라 병명을 말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왜 안 되나요?"라는 질문에 "규정이 그렇습니다"라고 답하는 것. 개인의 감정이나 서사가 아니라, 모두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시스템에 기대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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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 논고 (Technical Account): 전문가의 언어입니다. 경제학자가 복잡한 수식으로 시장을 설명하거나, 과학자가 전문 용어로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죠. 자기들끼리는 효율적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외계어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학술적 논고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로 번역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고요.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관계'
이 책의 가장 빛나는 통찰은 이 네 가지 방식에 우열이 없다는 점입니다. 더 똑똑하거나 잘난 이유 같은 건 없다는 거죠. 중요한 건 오직 '상황'과 '관계'입니다.
가령 약속에 늦었을 때, 불특정 다수를 향한 강연회라면 "차가 막혔습니다"라는 '관습'적인 이유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애타게 기다린 연인에게는 그 '이야기'를 아주 상세하게 들려줘야 하죠. "오다가 접촉사고가 났는데, 상대방이 막무가내라 경찰까지 오고..." 하는 식으로요. 반대로 부모가 자식에게는 "시키는 대로 해!"라며 이유 자체를 생략하기도 하죠.
결국 우리가 어떤 이유를 선택하는가는 내가 진실을 얼마나 잘 설명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과 나의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인 행위라는 겁니다.
정말이지, 인간 탐구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주제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이동진 평론가가 추천하는 두 개의 상반된 '이야기'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까지 함께 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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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낵지기는 현재 HMG경영연구원 미래트렌드연구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스낵레터는 업무 상 보안 이슈 없는 내용으로 기술/작성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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