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이 직원 관리를 위해 알고리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무기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마존 창고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정확히는 스캐너에 찍힌 바코드가 허락해 줍니다. 3분을 넘기면 '비생산적 시간'으로 기록됩니다. 10분을 넘기면 경고를 받습니다. 경고가 쌓이면 자동으로 해고됩니다. 사람이 해고하는 게 아닙니다. 알고리즘이 해고합니다.
2021년 앨라배마주 베세머의 아마존 창고에서 벌어진 노조 선거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1,798표 대 738표. 압도적인 패배였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 뒤에는 21세기 노동자 통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숨어 있었습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연구진이 밝혀낸 충격적인 진실입니다. 회사가 알고리즘을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보이지 않는 전자 채찍
"전자 채찍(Electronic Whip)"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테케 위긴 교수가 아마존의 감시 시스템에 붙인 이름입니다. 과거 농장주들이 채찍으로 노예를 통제했다면, 지금은 알고리즘 관리(Algorithmic Management)가 그 역할을 합니다. 더 정교하고, 더 은밀하며, 더 잔혹합니다.
아마존 창고 노동자들은 손목에 스캐너를 착용합니다. 매 순간 무엇을 하는지 기록됩니다. 몇 개의 상품을 집었는지, 얼마나 빨리 움직였는지, 언제 휴식을 취했는지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됩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다시 알고리즘으로 돌아와 노동자를 평가하고 통제합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을 노동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 경고를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열심히 일했는데." 베세머 창고에서 일했던 한 노동자의 증언입니다. 블랙박스 속에서 평가받고, 블랙박스에 의해 처벌받습니다.
당근과 채찍의 신기술
노조 선거가 시작되자 아마존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관대해진 겁니다. 생산성 기준이 50-75% 완화됐습니다. 무급 개인 시간 소진으로 인한 자동 해고가 중단됐습니다. 새로운 HR 데스크가 설치되고 직원들을 도와주는 상담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위긴 교수는 이를 "알고리즘 슬랙-커팅(Algorithmic Slack-cutting)"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알고리즘으로 통제하던 기업이 알고리즘을 완화하여 노동자의 마음을 사는 전략입니다. 전통적인 기업보다 훨씬 빠르고 극적으로 근무 조건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되기 때문입니다.
"6개월 동안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회사가 달라졌나 봐요." 한 노동자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아니, 더 심해졌습니다. 달콤한 당근이 사라지고 다시 채찍만 남았습니다.
감시당하는 집회장
"알고리즘적으로 유령이 출몰하는 강제 집회(Algorithmically Haunted Captive Audience Meetings)"
위긴 교수가 아마존의 반노조 집회에 붙인 또 다른 이름입니다.
집회장에는 평소 노동자들을 감시하던 스캐너와 컴퓨터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참석자들의 배지를 과시적으로 스캔했습니다. 노트북을 열어놓고 무언가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동시에 A to Z 앱을 통한 24시간 메시지 폭격이 시작됐습니다. "노조비 500달러를 내야 하고 현재보다 적거나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푸시 알림과 문자 메시지, 이메일이 24시간 쏟아졌습니다. 업무상 필수 정보도 이 앱으로 받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디지털 이간질
아마존의 감시망은 작업장을 넘어섰습니다. 다수의 페이스북 그룹을 모니터링했습니다. 레딧, 트위터에서 관련 키워드를 추적했습니다. 더 교묘한 건 "앰배서더 프로그램(Ambassador Program)"이었습니다. 일부 직원들을 고용해 소셜 미디어에서 반노조 댓글을 작성하게 했습니다. 동료 노동자인 척하며 "노조는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퍼뜨렸습니다.
알고리즘 관리의 불투명성과 고립성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소셜 미디어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패턴을 악용한 전략이었습니다.
상사가 알고리즘인 시대
아마존 사례는 단순한 기업 내부 문제가 아닙니다. AI 시대에 기업의 인재관리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과거에는 상사가 직원을 평가했다면, 이제는 알고리즘이 평가합니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누구의 가치관을 반영하느냐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례가 대조적입니다. 사티아 나델라 CEO는 "성장 마인드셋" 문화를 도입하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AI 개발의 핵심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에서 "모든 것을 배우는 사람"으로 직원들의 마인드셋을 전환시켰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기업 가치 3조 달러 돌파는 물론, 직원 만족도와 혁신 지수에서도 업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핵심은 명확한 철학입니다. 기술로 직원을 통제할 것인가, 기술로 직원의 잠재력을 발굴할 것인가. 알고리즘을 편견을 강화하는 도구로 쓸 것인가, 공정성을 확대하는 도구로 쓸 것인가. 이런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이 없으면 기술은 기존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공정함이라는 거짓말
AI 시대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는 새로운 차원의 도전입니다. 알고리즘은 객관적이고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발자의 편견과 기존 데이터의 불평등을 그대로 학습합니다.
아마존의 채용 AI가 여성 지원자를 체계적으로 배제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과거 남성 중심의 채용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여성'이라는 키워드 자체를 감점 요소로 인식한 것입니다. 이런 알고리즘이 인사 관리 전반에 확산되면 어떻게 될까요?
더 교묘한 건 이런 편견이 '객관적 평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점입니다. 직원들은 왜 불이익을 받는지 알 수 없고, 기업은 "알고리즘이 내린 공정한 판단"이라고 주장합니다. 투명하지 않은 블랙박스 속에서 차별이 더욱 은밀하게, 더욱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겁니다.
신뢰의 붕괴
기업의 인재관리 철학은 사회 전체로 확산됩니다.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이 보여준 '알고리즘 무기화' 기법은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배달 플랫폼의 라이더 관리, 콜센터의 상담원 평가, 심지어 대학의 학생 관리까지.
문제는 이런 관리 방식이 사회의 신뢰 구조 자체를 해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직원들이 회사를 불신하게 되고, 그 불신이 사회 전반의 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됩니다. 알고리즘이 만드는 건 효율성이 아니라 불안과 분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포용적 AI를 도입한 기업들은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직원들의 창의성이 높아지고, 이직률이 낮아지며, 혁신적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옵니다. 기업의 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도 함께 증가합니다.
결국 기업이 어떤 철학으로 AI를 활용하느냐가 그 사회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감시와 통제의 사회로 갈 것인가, 신뢰와 협력의 사회로 갈 것인가. 선택은 지금 이 순간 기업들이 내리는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선택의 순간
결국 핵심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기계에 맞춰 살 것인가, 기계가 우리를 위해 작동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알고리즘 관리는 인간을 데이터 포인트로 취급하지만 우리는 숫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실수를 하며,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다행히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EU는 AI 법안으로 알고리즘 결정의 투명성을 의무화했고, 캘리포니아는 창고 노동자들에게 생산성 할당량 공개를 강제하는 법안(AB 701)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은 대형 창고 운영업체들이 직원들에게 할당량과 그 위반 시 처벌 내용을 서면으로 공개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직원들도 "알고리즘 해킹(Algorithm Hacking)"이나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통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기업 내부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기술 발전 속도와 인간적 가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 아마존 창고에서 시작된 이 질문은 이제 모든 기업의 숙제가 됐습니다.
알고리즘이 직원들의 삶을 지배할 것인가, 기업이 알고리즘을 인재 성장의 도구로 활용할 것인가. 기술의 객관적 우수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 인재경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