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크크
The Brands Making Culture This Week, 이번 주, 브랜드가 아니라 감각을 만든 팀들.
*브크크가 맞으나, 부르기 쉽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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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농업박물관이 SNS에서 예상 밖의 ‘힙한 공간’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단순히 전시를 잘 만든 박물관이라기보다, 공공 문화기관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각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시작은 ‘농작물 클리커 키링’이었습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AI 이미지로 시제품을 기획했지만, 공개 직후 반응이 예상보다 뜨거웠고 결국 실제 굿즈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감자와 고구마, 참외 등 작물의 모양만 옮겨놓은 것이 아닙니다. 과일과 구황작물의 특성에 맞춰 서로 다른 스위치 축을 적용해 클릭감까지 달리했습니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한 점도 눈에 띕니다. 작은 키링 하나에 농업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담아낸 것입니다.
공간도 같은 방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직원들이 직접 가꾸는 논밭과 도심 속 생태 공간, 수직농장과 농기계 전시는 따로 노는 콘텐츠가 아닙니다. 과거의 농업과 미래의 농업을 나누기보다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 보여줍니다. 덕분에 농업은 박물관 속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연결된 일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곳은 전시를 '본다'기보다 직접 '느낀다'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손끝에는 키링의 클릭감이 남고, 눈앞에는 논밭의 풍경이 이어집니다. 농업을 설명하려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만듭니다. 공공기관도 사람들의 감각을 움직이는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곳은 거창한 설명 없이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원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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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스위스 브랜드 On은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더 좋은 신발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신발을 만드는 방식을 바꿀 수는 없을까였습니다.
On의 상징인 클라우드CloudTec 쿠셔닝은 이제 익숙하지만, 최근 LightSpray가 흥미롭습니다. 실을 분사하듯 갑피를 한 번에 만드는 제조 기술인데, 기존처럼 여러 부품을 재단하고 봉제하는 공정을 크게 줄였습니다. 제작 시간은 짧아지고, 부품 수와 폐기물도 감소합니다. 운동화 디자인보다 제조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한 셈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기술보다 사고방식입니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완성된 제품을 차별화하려고 합니다. On은 완성품 이전의 공정을 경쟁력으로 삼았습니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보는 것은 운동화 한 켤레이지만, 브랜드는 공장에서 이미 승부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접근은 자동차 산업과도 닮았습니다. 기가캐스팅이 차체를 조립하는 방식을 바꾸고, SDV가 자동차의 가치를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기고 있듯, On 역시 운동화를 넘어 제조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하고 있습니다.
단, On은 기술만으로 브랜드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로저 페더러와의 협업, 로에베와의 컬렉션, 젠데이아 캠페인은 성능을 설명하기 위한 광고가 아닙니다. 러닝화를 스포츠 용품에서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기술이 브랜드를 만들고, 문화가 그 브랜드를 오래 기억하게 합니다.
후발주자가 선두를 따라잡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더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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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기간 도쿄에 가실 일이 있다면, 아자부다이 힐즈 갤러리에서 열리는 '盗-TOH-' 프로젝트를 권해드려요.
2024년 첫 선을 보인 '盗-TOH-'는 "소리를 내지 않고 감시 카메라를 피하면 전시장 안의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첫 회 당시 입장을 위한 대기 시간만 최대 4시간에 달했고, 티켓 역시 순식간에 매진되었죠. SNS를 중심으로 관객들의 미션 수행 영상이 빠르게 확산하며, 도쿄에서 가장 독창적인 이색 팝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번 ‘기가마트전(ギガマート展)’은 “60초 안에 훔쳐라”라는 파격적인 미션을 앞세운 체험형 팝업 전시입니다. 일본의 편의점 문화를 예술적 IP로 재해석한 'Conveni Alternative' 프로젝트죠.
가상의 마트 공간으로 꾸며진 전시장 내부에는 특수 감시 카메라 네트워크가 촘촘히 작동하며, 관람객은 제한시간 60초 동안 카메라의 시야를 미꾸라지처럼 피해 상품을 무사히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미션에 성공하면 해당 상품을 실제로 손에 넣는 게이미피케이션 요소가 결합되어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익숙한 편의점 형태의 공간에서 관객은 마케팅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사물과 일대일로 대치하는 '플레이어'가 되죠. 과도한 상업주의와 과잉 소비 패턴에서 벗어나, 소비라는 행위 자체와 사물의 가치를 관객이 직접 체감하고 재해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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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미국은 화웨이에 빗장을 걸었습니다. 반도체도 스마트폰에 쓰던 구글 안드로이드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지요. 회사 매출 절반을 책임지던 스마트폰 사업이 그대로 주저앉았고, 2021년 매출은 30%나 줄었습니다. 누가 봐도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화웨이 매출은 제재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봉쇄가 이 회사를 무너뜨리지 못했을까요. 핵심은 '어디가 급소인가'에 있습니다.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 장비인 EUV는 네덜란드 한 회사만 만들고, 스마트폰 운영체제는 구글이, AI 칩은 엔비디아가 쥐고 있습니다. 이들이 없으면, 아무리 큰 회사라도 손발이 묶입니다. 후발 주자의 약점은 '물건을 못 파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남의 손에 달린 부품에 있었던 겁니다.
화웨이는 세 가지로 맞섰습니다. 첫째, 힘들수록 연구비를 줄이는 대신 오히려 늘렸습니다. 2025년엔 매출 22%를 연구개발에 썼지요. 둘째, 자동차를 직접 만들기보다 '자동차의 두뇌'인 자율주행·화면 기술을 파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 잘 팔리는 차 열 대 중 아홉 대가 화웨이 기술을 씁니다. 셋째, 회사를 상장하지 않고 직원 16만여 명이 지분을 나눠 갖는 구조를 지켰습니다. 눈앞의 실적을 재촉하는 외부 주주가 없으니, 오래 걸리는 도전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겁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너무 낭만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화웨이가 버틴 데에는 14억 명이라는 거대한 내수 시장과 국가의 든든한 자금이 있었습니다. 이런 조건이 없는 나라나 기업이 똑같이 따라 하기는 어렵지요. 반도체도 아직 최첨단에는 못 미치고, 여든두 살이 된 창업자의 뒤를 누가 이을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막힌다고 주저앉는 대신 급소를 지키고 오래 버틸 체력을 기르면, 봉쇄도 새 출발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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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의 편집증적 낙관주의paranoid optimis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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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우리는 혁신을 새로워지는 일이라 믿는다. 그러나 노키아는, 성공에 눌려 잃어버린 자신의 기질을 의식적으로 되찾는 일이야말로 전환기의 진짜 혁신임을 증명했다.
CNBC는 노키아Nokia를 "새로운 돈 버는 기계New Money Machine"라 불렀다. 영상이 보여주는 것은 이 회사가 지금 어떻게 돈을 버는가다. 통신사업자에게 파는 장비, 방대한 특허 라이선싱, 그리고 AI 데이터센터라는 새 시장. 조사기관 옴디아Omdia는 그 한 축인 AI-RAN 시장을 2030년까지 누적 2천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한다. 훌륭한 비즈니스 이야기다.
그런데 '어떻게 돈을 버는가'는 '어떻게 되살아났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를 쥐었다가 무너진 회사가 다시 일어선 힘은 사업 목록이 아니라 그 뒤편, 조직의 기질에 있다. 영상은 여기까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키아 전현직 임원들을 인터뷰한 연구와 당시 회장의 회고는 그 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 '혁신'을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진화를 '변화'라고 배우지만, 진화가 실제로 보존하는 단위는 변하지 않고 복제되는 유전자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표현처럼 몸은 유전자가 잠시 올라타는 '운반체vehicle'일 뿐이다. 그러나 유전자에는 더 까다로운 진실이 하나 있다. 유전자는 있어도 발현되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말하는 유전자 침묵gene silencing이다. 노키아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노키아는 DNA를 '지켜서' 이긴 것이 아니라, 한번 침묵당한 DNA를 '되살려서' 이겼다.
노키아는 무엇을 바꾸었는가?
위기에 처한 기업은 핵심을 지키고 곁가지를 쳐낸다고들 한다. 노키아는 정반대였다. 핵심처럼 보이던 것부터 버렸다. 2013~2014년, 회사의 정체성이자 세계 1위의 상징이던 휴대폰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에 약 54억 유로에 넘겼다. 지멘스Siemens의 합작사 지분을 사들이고 2016년 알카텔-루슨트Alcatel-Lucent를 약 156억 유로에 인수해 통신 인프라로 몸을 옮겼으며, 다시 인피네라Infinera 인수와 엔비디아Nvidia의 10억 달러 투자로 AI 데이터센터라는 또 다른 몸으로 나아갔다. 리스토 실라스마Risto Siilasmaa 회장 시절 노키아 직원의 99% 이상은 3년 전만 해도 노키아 사람이 아니었다. 제품도, 고객도, 사람도 거의 전부 바뀌었다. 겉으로 보면 이미 다른 회사다.
노키아는 무엇을 잃었는가?
그러나 노키아를 무너뜨린 것은 바뀐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이었다. 스마트폰 시절 노키아에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기질이 분명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성공에 짓눌려 침묵했다는 데 있다. 팀 부오리Timo Vuori와 쿠안 후이Quan Huy가 전현직 임직원을 인터뷰해 정리한 연구는, 몰락의 핵심 원인으로 '공포의 문화'를 지목한다. 성과 압박에 눌린 중간관리자들은 심비안Symbian이 아이폰에 뒤처졌다는 진실을 알면서도 위로 올리기를 두려워했다. 나쁜 소식을 마주 볼 유전자는 회사 안에 있었지만, 공포가 그 발현을 틀어막았다. 노키아가 스마트폰을 놓친 진짜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침묵시킨 문화였다.
그리고 무엇을 되찾았는가?
위기의 기업은 새로운 전략을 발명해야 한다고 흔히 믿는다. 그러나 실라스마 회장이 한 일은 발명이 아니라 복원이었다. 그는 새 DNA를 이식하지 않았다. 그 DNA를 가로막던 공포를 걷어내, 침묵당한 유전자를 다시 발현시켰다. 최악을 냉정하게 가정하되 절망하지 않고 행동하는 태도, 나쁜 소식을 가장 먼저 식탁에 올려놓고 마주 보는 규율. 실라스마는 이 기질을 '편집증적 낙관주의paranoid optimism'라 불렀다.
전환기 리더에게 그가 건넨 조언은 이랬다.
"받는 조언을 모두 믿지 마십시오. 스스로 생각하고, 무엇이 이치에 맞는지 따져 보십시오."
물론 편집증적 태도는 노키아만의 것이 아니다.
앤디 그로브Andy Grove가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고 한 것처럼, 위기의 언어로는 흔하다.⁶ 요점은 기질의 독창성이 아니다. 그것을 한번 잃고도 다시 세울 수 있느냐다. 노키아가 증명한 혁신은 여기에 있다.
짐 콜린스Jim Collins가 말한 "핵심은 보존하고 발전은 자극하라preserve the core, stimulate progress"의 가장 극단적 사례는, 핵심을 잃었다가 의식적으로 되찾은 회사다. 그 결과는 숫자로 돌아왔다. 2026년 1분기 AI·클라우드 고객 매출은 전년 대비 49% 늘었고, 주가는 최근 1년 새 약 175% 올랐다.
DNA는 물려받아 안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DNA를 자동으로 대물림되는 안전한 유산으로 여긴다. 그러나 기업의 DNA는 그렇지 않다. 성공이 그것을 침묵시키고, 공포가 발현을 막으며, 누군가 의식적으로 다시 깨우지 않으면 사라진 것과 다름없다. 노키아는 자기 유전자를 지켜서가 아니라, 잃었다가 되찾아서 살아남았다.
그러니 전환기의 기업이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은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성공에 취해 우리가 침묵시킨 우리 자신은 무엇인가"이다. 노키아의 부활에서 얻을 교훈은 새로운 사업 목록이 아니다. 잃어버린 자기 기질을 다시 발현시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이 되는 혁신일 것이다.
참고
- CNBC, 〈Inside Nokia's New Money Machine〉(Built for Billions 시리즈 1편). AI-RAN 시장 2030년 누적 2천억 달러 추정은 옴디아Omdia 자료를 영상이 인용한 것이다. 본문의 '기질·문화' 해석은 영상이 아니라 아래 연구·인터뷰에 근거한 필자의 재구성이다.
- 휴대폰(디바이스·서비스) 부문 마이크로소프트 매각, 약 54억 유로 — Nokia 뉴스룸(2014년 매각 완료). 알카텔-루슨트 인수, 약 156억 유로 — France 24(2015), Nokia 인수 완료(2016). 인피네라 인수, 약 23억 달러(2025) — Data Center Dynamics. 엔비디아 10억 달러 투자(2025) — Nokia 뉴스룸. 2026년 1분기 AI·클라우드 매출 +49%(그룹 매출의 8%)·광네트워크 +20% — Nokia Q1 2026 보고서. 주가 최근 1년 약 +175% — The Motley Fool(2026).
- BCG, 〈The Rebirth of Nokia: An Interview with Chairman Risto Siilasmaa〉(2016). '편집증적 낙관주의'와 직원 99% 이상 관련 내용은 실라스마의 직접 발언(원문 "over 99% of them did not carry a Nokia badge just three years ago")이고, 기업가치 약 20배는 기사 서문의 서술이다.
- Timo O. Vuori & Quy N. Huy, 〈Distributed Attention and Shared Emotions in the Innovation Process: How Nokia Lost the Smartphone Battle〉,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2016.
- 위 BCG 인터뷰(주 3). 실라스마가 다른 리더에게 건넨 조언. 원문 "Don't believe all the advice that you get. Think for yourself. What makes sense?" (같은 대목의 "Be a paranoid optimist. It's a good way to navigate through hard times."에서 '편집증적 낙관주의'를 옮겼다).
- Andrew S. Grove, 《Only the Paranoid Survive》, 1996.
- James C. Collins & Jerry I. Porras, 《Built to Last》, 1994. 유전자·운반체 논의는 Richard Dawkins, 《The Selfish Gene》(1976); 후성유전학의 유전자 침묵 개념 참조.
- 정점기(2008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약 40% — CNBC(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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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중국차의 겉모습(싼 가격·보조금)을 관세로 때리지만, 그 겉모습은 이미 '싸다'를 벗고 있다. 샤오펑은 "저렴함만 내세운 EV로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고, 샤오미는 2030년 유럽 '프리미엄 톱5'를 노리며 뉘르부르크링에서 완전자율주행 랩을 돌았다. 가베칼의 표현대로 이들은 "테크 기업처럼 자동차를 만들고 판다." 관세를 매기는데도 알릭스파트너스는 중국 브랜드의 EU 점유율이 2030년 16%까지 오른다고 본다. 관세가 겉모습을 늦추는 사이, DNA는 다른 겉모습으로 갈아입는 셈이다.
그 DNA는 가격이 아니다. 자동차를 소비자 전자제품처럼 만들고 파는 능력, 즉 소프트웨어·자율주행, 화웨이의 자체 반도체, 내수 경쟁에서 갈고 닦은 '갈아치우기' 속도일 것이다. 가격은 관세로 비싸게 만들 수 있어도, 이 속도는 관세로 느리게 만들 수 없다. 물론 과잉생산발 가격전쟁, 검증 안 된 소프트웨어 장기 지원, 직판(D2C) 모델의 반복된 실패처럼 아직 바뀔 수 있는 겉모습도 많다. 요점은 하나다. 관세로 막히는 겉모습과, 막히지 않는 DNA를 나눠서 봐야할 것이다.
출처: Financial Times(2026), 〈유럽 자동차 시장을 파고드는 중국의 공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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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小而美xiǎo ér měi
- 'Small is beautiful'로 방향을 튼 중국의 대아프리카 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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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9회 남아공-중국 무역투자진흥회의 자리에서, 우펑Wu Peng 주남아공 중국대사는 하나의 숫자를 앞세웠다. 중국의 대남아공 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누적액이 132억 달러를 넘었고, 그 투자가 남아공에서 2만 6,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20년 전이라면 이 자리의 주인공은 대사가 아니라 준공식 테이프를 자르는 굴착기였을 것이다.
중국의 대아프리카 관여는 오랫동안 철도·항만·발전소 같은 '메가 인프라'로 각인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남아공에서 오가는 협정의 목록은 다르다. 시멘트 합작, 트럭 조립, 광산 장비, 농산물 검역. 거대한 구조물을 세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산업을 현지에 심는 이야기다.
'원자재 식민지'라는 오랜 뿌리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경계해 온 것은 원조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자국이 원자재를 캐서 보내고 완제품을 사서 쓰는 소비 시장으로 굳어지는 '식민지형 교역 구조'다. 이 구조에서 부가가치와 일자리는 대부분 대륙 밖에서 생기고, 아프리카에는 채굴장의 먼지와 수입 청구서만 남는다. 문제는 이 구조가 경제 통계에 그치지 않고, 사고방식 곧 '개발은 밖에서 온다'는 멘탈모델mental model로도 굳어 있다는 점이다. 원조를 주는 쪽이 주어이고 아프리카는 늘 대상이 되는 문법이다.
남아공에는 여기에 두 가지 한계를 더했다. 하나는 제조업 기반의 오랜 침식이고, 다른 하나는 전력공사Eskom의 상시적 순환 단전load shedding이다. 공장을 돌리려 해도 전기가 끊기는 나라에서, 산업은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했다.
기존 대응과 그 한계
남아공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산업통상경쟁부the dtic는 해외 자본에 현지 부가가치 창출beneficiation과 함께 "이곳에 짓고, 이곳에서 고용하며, 기술을 이전하라build here, hire here, transfer skills here"는 국산화 조건을 요구해 왔다. 원자재를 그대로 실어 보내는 대신 현지에서 가공하고, 완제품을 수입하는 대신 현지에서 만들게 하려는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조건을 내거는 것과 자본이 실제로 뿌리내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과거 중국의 두 진출 방식 모두 이 간극을 넘지 못했다. 메가 인프라는 랜드마크를 남겼으나 현지 산업과 고용에 연결되지 못한 채 부채 논란만 키웠고, 자금이 적은 이민 상인들의 보따리 무역은 주변부 경제에 머물러 현지 사회와 겉돌았다. 구조물은 세워졌고 상점은 늘었지만, 남아공 사람들이 "이 투자가 내 일자리가 된다"고 체감하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제조업을 이식하는 세 길
최근의 변화는 조건과 자본이 처음으로 맞물리는 지점에서 나타난다.
현지 공장으로 파고들기.
웨스턴케이프주 아틀란티스에 자리 잡은 하이센스Hisense 공장은 2013년 가동을 시작해 2023년 10주년을 맞았다. 이곳은 직접 고용 900명 이상, 간접 고용 3,000명 이상을 만들었고, 텔레비전과 냉장고 누적 100만 대를 생산해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수출한다. 폐업이 이어지던 지역에 들어선 이 공장은 상시 단전에 대응하려고 부지에 자체 태양광 설비를 두어, 전력망이 끊겨도 라인을 멈추지 않는 오프그리드off-grid 생산 구조를 갖췄다. 이스턴케이프주 코에가 경제특구의 제일기차 트럭 공장은 2018년 4,000호에 이어 현지 조립 누적 7,000호를 넘겼고, 2024년 11월 2억 랜드 규모의 설비 현대화 투자를 발표했다. 같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중국국영건설공학공사CSCEC는 남아공 시멘트사 아프리샘AfriSam과 건설 자재 현지 조달에 관한 양해각서를 맺어, 자재까지 현지에서 조달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자원 개발에 기술을 함께 심기. 자원 부문에서는 장비만이 아니라 그 장비를 다루는 법까지 옮겨 오는 사례가 나왔다. 2025년 9월 중장비 제조사 사니SANY 그룹과 남아공 광업회사 만텡구 마이닝Mantengu Mining은 전략적 협력 협정을 맺었다. 만텡구는 서구식 중장비 대신 사니의 채굴 장비를 도입하되, 단순 구매가 아니라 조립·유지보수 노하우를 현지 엔지니어가 익히는 조건을 함께 걸었다. 장비를 수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장비를 운용·정비할 역량을 현지에 남기려는 설계다.
제도와 시장으로 잇기.
개별 공장을 넘어 관계를 제도로 묶는 작업도 진행된다. 남아공경영자연합BUSA은 200개가 넘는 중국 기업을 대표하는 남아공중국경제무역협회SACETA와 협력 양해각서를 맺어, 현지 기업과 중국 기업이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창구를 만들었다. 시장도 한 방향이 아니다. 중국은 남아공산 농식품 66개 품목을 수입하며, 남아공 마카다미아의 50%, 페칸의 98%가 중국으로 간다. 광물을 캐서 보내던 나라가 고부가가치 농산물을 파는 나라로 조금씩 이동하는 셈이다.
여론의 검증
이식이 실제로 뿌리내렸는지는 결국 남아공 사람들의 인식에서 드러난다. 아프로바로미터Afrobarometer 라운드 9(2022) 조사에서 남아공 응답자의 37%가 중국의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미국(32%)과 러시아(25%)를 앞섰다. 절대치는 높지 않고 최근 몇 년 사이 주요국 전반에 대한 호감이 함께 낮아졌지만, 순위에서 중국이 앞선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륙 전체로 넓히면 경향은 더 뚜렷하다. 아프로바로미터의 최근 라운드에서 중국은 미국·유럽연합을 제치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호감도가 높은 강대국으로 나타났다.
물론 우려도 공존한다. 과잉 부채와 자산 통제력에 대한 경계는 여전하다. 다만 눈여겨볼 것은, 현지 지식인 세대가 이 문제를 중국의 설계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자국 거버넌스의 투명성 부족에서도 원인을 찾는다는 점이다. 고용과 전력과 기술이라는, 손에 잡히는 이득이 여론의 토질을 바꾸고 있다.
더 넓은 이식을 위한 기회 만들기
남아공 사례가 보여주는 전환의 핵심은 규모의 축소가 아니라 방향의 전환이다. 2024년 베이징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에서 중국이 향후 3년간 약 500억 달러(3,600억 위안)와 100만 개 일자리를 약속하며 대형 인프라 대신 '소이시미小而美(작고 아름다운, Small is beautiful)'라 부르는 소규모·현지 제조로 무게를 옮긴 것도 같은 흐름이다. 그 소규모·현지 제조가 아프리카 땅에서 완제품을 만드는 '메이드 인 아프리카Made in Africa'라는 구체적 형태를 띤다. 이 전환을 두고 한 유럽 연구기관은 중국이 "대형 인프라 거래에서 규범 권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식에는 조건이 따른다. 자본이 들어오는 속도만큼 현지의 제도, 곧 부채 투명성과 기술 이전의 실질을 함께 키우지 못하면, 뿌리내림은 다시 의존으로 굳는다. 그러나 그 조건을 채우는 몫은 공여국만의 것이 아니라 남아공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파트너란 몫과 책임을 함께 나누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남아공에서 벌어지는 일이 나이지리아·케냐·에티오피아처럼 산업화의 문턱에 선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 나아가 원자재 수출 구조에 갇힌 여러 신흥국에도 유용한 좌표가 되기를 바란다. 다리를 놓아 주는 파트너보다, 공장을 함께 짓고 그 안에서 사람을 길러 내는 파트너가 더 깊은 신뢰를 남긴다는 것. 남아공의 공장들이 지금 그 명제를 실측하고 있다.
참고
- 〈South Africa, China bilateral relations strengthened during ninth trade fair〉, Engineering News, 2025.9.23.
- 〈Hisense South Africa celebrates the 10th anniversary of its Atlantis Factory〉, PR Newswire, 2023.6.6.
- CNA Correspondent, 〈China's bigger bet on South Africa〉, Channel News Asia, 2025(태양광 설비 규모는 현지 취재 보도 기준).
- 〈FAW to upgrade Coega truck plant in R200m investment〉, Engineering News, 2024.11.13; 〈7,000th unit assembled at FAW Trucks Eastern Cape plant〉, FAW South Africa.
- 〈South Africa, China strengthen economic ties with new trade and investment agreements〉, People's Daily Online, 2025.9.30.
- 위의 자료; 〈South Africa's Mantengu secures partnership with China's SANY〉, CGTN Africa, 2025.
- Engineering News, 앞의 자료(주 1).
- People's Daily Online, 앞의 자료(주 5).
- 〈Positive perceptions of foreign powers decline in South Africa; China viewed more favourably than U.S., Russia〉, Afrobarometer, 2023(라운드 9, 2022년 조사).
- 〈China Tops Favorability Rankings in Africa, Outpacing U.S. and EU〉, The China-Global South Project, 2025.6(아프로바로미터 라운드 10 기반).
- 〈FOCAC 2024: China pledges $50 bn and 1m jobs to Africa〉, 2024; Center for Global Development, 〈Channeling the FOCAC 2024 Financing Pledge〉, 2024.
- SWP, 〈FOCAC 2024: Moving Away from Large Infrastructure Deals towards Normative Power of China〉, Stiftung Wissenschaft und Politik,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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