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제품이 만들어지기 전에, 혁신적인 소재가 먼저 만들어진다."
혁신은 완성품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소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소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광고 모델의 표정이 이를 표현할테지.
야스기는 일본에서도 특별한 도시다.
수백 년 전 이곳에서는 다타라(たたら) 제철을 통해 철모래를 녹여 일본도의 재료인 다마하가네(玉鋼)를 만들었다. 시대가 바뀐 뒤에도 철를 다루는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칼을 만들던 기술은 공구강과 금형강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세계 제조업이 YSSYasugi Special Steel 라는 이름으로 신뢰하는 특수강 브랜드가 되었다.
[참고 | YSS(Yasugi Special Steel)]
YSS는 일반 철강이 아닌 공구강, 금형강, 고속도강(HSS) 등을 생산하는 프리미엄 특수강 브랜드다. 자동차 금형, 반도체 제조장비, 항공우주 부품, 정밀 절삭공구 등 높은 정밀도와 내구성이 요구되는 산업에 사용된다. 세계 금형 산업에서는 'YSS' 자체가 품질의 기준으로 통할 만큼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특수강을 하나의 제품Product 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소재기업의 경쟁력은 제품이 아니라 공정Process 에 있다.
같은 성분의 철이라도 어떻게 녹이고, 어떻게 단조하고, 어떻게 열처리하고, 어떻게 검사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물성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은 설비를 산다고 복제되지 않는다. 관련 논문을 읽는다고 따라 할 수도 없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 공정을 바꾸고, 실패를 반복하고, 다시 품질 기준을 높이는 과정이 수십 년 동안 이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제조 기술이 된다. 그래서 소재기업이 파는 것은 철이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물성을 구현하는 제조 공정이다.
[참고 | 제조업과 소재업의 차이]
일반 제조업은 제품을 만드는 산업이라면, 소재산업은 제품의 성능을 결정하는 물성을 만드는 산업이다. 같은 자동차라도 금형의 수명, 배터리의 효율, 반도체 장비의 정밀도는 소재의 성능에 의해 좌우된다. 소재기업은 '철'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제조 기술과 공정을 제공한다.
이 지점에서 히타치와 베인은 같은 회사를 다르게 바라봤다.
히타치는 디지털, 에너지, 철도, 사회 인프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며 프로테리얼을 매각했다. 경쟁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룹 전략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반면 베인은 다른 가능성을 봤다.
베인은 이미 키옥시아Kioxia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 키옥시아의 경쟁력이 메모리 반도체라는 제품 자체보다 수율Yield 을 만들어내는 제조 공정에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프로테리얼 역시 마찬가지였다. 철강회사가 아니라 100년 동안 축적된 소재 공정의 집합체로 본 것이다.
[참고 | 베인이 본 가치]
베인캐피털은 2023년 약 8,170억 엔 규모로 히타치금속(현 프로테리얼)을 인수했다. 이후 특수강과 전력전자 소재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며 기업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키옥시아 투자와 마찬가지로 '제품'보다 '복제하기 어려운 제조 공정'에 투자하는 베인의 포트폴리오 전략과 맞닿아 있다.
그제야 야스기 공장이 다르게 보였다.
철을 녹이는 조건. 열처리의 순서. 고객마다 다른 품질 기준. 실패와 개선의 기록.
그리고 그것을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 단순히 공장만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공장은 지을 수 있다. 최신 설비도 들여올 수 있다.
그러나 이제껏 다듬어진 제조 공정은 단기간에 만들 수 없다. 시간의 축적을 요한다.
베인이 산 것은 공장이 아니라 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