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스낵지기입니다.
현대차로 이직해서 조직에 처음 적응하던 시절을 돌아보면, 낯선 환경과 익숙하지 않은 방식들 속에서 여러 번 이탈을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제도보다 사람이었습니다. '좋은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TED 영상을 보고, 사내전문가에게 클래식 강의를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의 시간이 있었기에 조직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같이 하고 싶었으니까요.
최근 류재언 변호사의 세바시 강연 <개인의 노력 VS. 조직의 협업: AI 프롬프트 공유 거절, 누가 옳은가?>를 보면서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 강연이 날카로운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프롬프트 공유 논쟁을 다루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오래된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바로 조직이 개인의 노력을 어떻게 대하고, 협업을 어떤 방식으로 요구해왔는가의 문제입니다.
왜 '거절'에 공감했나
논란의 시작은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사연이었습니다. 전사적으로 AI 활용이 확산된 뒤, 개인 시간을 들여 프롬프트를 개발하고 성과를 내던 신입사원에게 팀장이 노하우 공유를 요청했지만, 당사자는 무상 공유는 어렵다며 거절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대중의 반응이었습니다. 과거의 조직 문법으로 보면 비판받기 쉬운 장면인데, 실제로는 신입의 거절권에 공감하는 반응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필요하면 직접 공부하라”는 댓글이 높은 공감을 얻었다는 점은, 사람들이 이 사안을 단순한 협업 이슈가 아니라 개인의 시간, 노력, 전문성이 어떻게 취급되는가의 문제로 받아들였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엑셀 공유와 다른 이유
여기서 많은 실무자가 놓치기 쉬운 지점이 있습니다. 과거 엑셀을 잘하던 선배가 템플릿을 공유하던 상황과, 오늘날 AI 프롬프트를 공유하는 상황은 구조적으로 다릅니다.
예전에는 노하우를 나눠도 숙련도 자체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파일을 공유해도 결국 누가 더 잘 다루는지는 남았고, 기술의 수명도 길었기 때문에 조직 안에서의 평판과 영향력이 유지됐습니다. 반면 지금의 프롬프트는 복제 비용이 거의 없고, 공유되는 순간 바로 재사용됩니다.
그 결과 개인이 어렵게 쌓은 차별성이 순식간에 희석될 수 있다는 불안이 훨씬 큽니다. 그래서 이 거절을 단순히 “요즘 신입은 이기적이다”라고 읽으면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이 반응의 밑바닥에는 인색함보다 불안이 있습니다. 내 경쟁력이 빠르게 복제되고, 그 뒤에는 정작 기여한 사람만 희미해질 수 있다는 현실적 불안입니다.
리더의 말이 먹히지 않는 이유
문제는 많은 조직이 여전히 예전 언어로 이 상황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회사에서 월급 받고 만든 건 회사 것 아닌가”, “팀원이면 공유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너 혼자 일하나” 같은 말은 과거에도 거칠었지만, 지금은 설득보다 반발을 부르는 표현이 되기 쉽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런 언어에는 인정도, 보상도, 선택권도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실무자가 퇴근 후와 주말까지 써가며 익힌 역량이라면, 일방적 공유 요구는 협업 요청이 아니라 무상 이전 요구처럼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구성원은 조직을 신뢰하기보다 자기 경쟁력을 숨기는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결국 “까라면 까라” 식의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복종을 얻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침묵과 이탈을 부릅니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더 적게 말하고, 덜 나누고, 필요하면 떠날 준비를 합니다. 조직이 잃는 것은 프롬프트 몇 줄이 아니라, 학습 속도와 자발성, 그리고 인재가 남아 있을 이유입니다.
해법은 협업 구호가 아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협업을 강조하는 구호가 아니라, 가치 교환의 설계입니다. 류재언 변호사가 짚듯 핵심은 명령이 아니라 인정과 보상, 그리고 공유 범위에 대한 협상입니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무조건 공개하거나 정면 거절하는 양자택일보다는, 핵심 원칙만 먼저 공유하거나 샘플 중심으로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기여가 어떻게 평가되고 기록될지 분명히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리더라면 먼저 “당신의 노력이 팀에 어떤 의미인지”를 언어로 인정하고, 그 기여가 평가와 보상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제시한 뒤 요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유가 희생이 아니라 선택이 됩니다.
이 논쟁의 본질은 프롬프트 자체가 아닙니다. AI 시대의 조직은 여전히 협업을 말하지만, 많은 구성원은 협업보다 생존을 먼저 고민합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원래 조직이 그런 것”이라는 익숙한 말이 아니라, 왜 그 말이 더는 통하지 않는지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 [리더·베테랑 실무자를 위한] 초전 설득(Pre-suasion) 프레임
일방적으로 지식을 빼앗는 약탈자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오픈소스를 공유하게 만드는 개발자 생태계의 문화를 이식해야 합니다.
적어도 리더/선배라면 요구하기 전에 아래와 같이 제안할 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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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Recognition): "님, 퇴근 후에도 혼자 기술을 익히느라 고생 많았어요. 우리 팀의 공식 AX 스페셜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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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Reward): "님의 이 독보적인 기여도를 연말 성과 평가에 반드시 공식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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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위(Range): "전체 소스 공개가 부담스럽다면, 핵심 원칙과 샘플 가이드라인부터 단계적으로 공유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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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Record): "님이 구축한 사내 가이드라인 템플릿에 최초 창작자로서의 크레딧(Credit)을 명확히 남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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