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오랜만에 친구와 연애, 운명 이야기를 나눴어요. 봄이 왔잖아요. 나이는 제법 먹었는데도, 설레는 건 여전하더라고요. 다만 예전의 ‘흔한 사랑’과는 조금 결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애태우듯 사랑한다기보다, 삶을 애정하기에 곁에 있는 이들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인지 ‘연애 이탈’이라는 단어가 괜히 자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말 연애가 사라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연애를 바라보는 방식이 바뀐 걸까. 실제로는 어떤 현상인지, 이걸 트렌드라는 언어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부터 차근차근 풀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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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가 줄었나, 연애의 조건이 바뀌었나 - '연애 이탈恋愛離れ'을 트렌드로 읽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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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다 연애 안 한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한 번 입 밖에 나오는 순간 곧바로 세대 진단이 됩니다.
하지만 트렌드를 읽는 입장에서는 질문을 조금만 틀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연애를 안 한다”가 아니라 “연애를 가능하게 하던 조건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묻는 편이 훨씬 덜 틀리는 방식입니다.
일본 하쿠호도 생활종합연구소(生活総研)가 ‘젊은 세대의 연애 이탈’을 다루면서, 제목에 굳이 ‘연애 이탈’을 따옴표로 묶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들은 “연애가 사라졌나?”가 아니라 “연애가 사라졌다는 말이 왜 이렇게 그럴듯해졌나?”를 묻습니다. 현상 그 자체보다, 그 현상을 포장하는 문장부터 의심하자는 제안입니다. 그리고 첫 질문이 놀라우리만큼 단순합니다.
“그럼, 예전 젊은이들은 정말 다들 연애했나?”
일본 IPSS(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출생동향 기본조사를 보면, 2021년 기준 미혼 18–34세 중 ‘연애 관계(연인·약혼자 있음)’ 비율은 남성 21.1%, 여성 27.8%입니다. 숫자만 보면 “확실히 낮다”고 느끼기 쉽지만, 하쿠호도 생활종합연구소가 강조하는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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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블록버스터 영화 시리즈인 〈미션 임파서블〉을 다룹니다. 모티브가 된 글은 전기가오리의 '<미션 임파서블> 속 윤리적 소진('26년 1월 pdf 설명원고 발간본)'입니다. Copyright 문제로 공유드릴 순 없지만, 글을 읽고 난 후, 다시 영화를 보고 고민한 글을 공유합니다. 무엇보다 이 글의 관심사는 영화 자체보다, 영화가 보여주는 하나의 구조에 있습니다. 조직의 중간 책임자가 처하는 위치의 본질, 그리고 그 위치가 지금 인재 확보와 조직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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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세 개의 층위가 있습니다.
맨 위에 CIA 부국장 슬론이 있습니다. 임무를 설계하고, 자원을 배분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조직으로 치면 경영진에 해당합니다.
가운데에 이단 헌트가 있습니다. IMFImpossible Mission Force 팀장입니다. 슬론의 지시를 받아 현장에서 임무를 실행하면서, 동시에 팀원들의 안전을 책임집니다. 조직으로 치면 중간 관리자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헌트의 아래에 루터가 있습니다. 시리즈 첫 편부터 함께한 기술 전문가로, 해킹과 정보 분석을 담당합니다. 루터는 지휘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역할을 수행합니다. 20년 넘게 프라하에서, 바티칸에서, 두바이에서, 런던에서 헌트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겨온 사람입니다. 조직으로 치면 실무 전문가, 개인 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에 해당합니다.
헌트는 시리즈 내내 같은 종류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임무 수행 중 루터가 위험에 처하면, 임무를 중단하고 루터를 구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대량살상무기가 적의 손에 넘어가거나 회수가 지연되고, 슬론은 그를 비난하지만, 헌트는 같은 선택을 반복합니다.
슬론의 관점은 명확합니다. 루터 한 명의 생명 대 카슈미르 수백만 명의 생명. 효용주의적으로는 수백만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슬론의 비판은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구조적입니다. 헌트는 체계적으로 근거리 편향proximity bias에 빠지고, 눈앞의 루터만 보며, 더 큰 그림을 놓칩니다.
경영의 언어로 옮기면, 슬론의 판단은 틀리지 않습니다. 조직 전체의 이익을 위해 부분적 희생을 감수하는 것은 경영자가 매일 내리는 의사결정의 본질입니다. 분기 목표를 위한 구조조정, 효율화를 위한 인력 재배치, 비용 절감을 위한 사업부 통폐합. 이 모든 결정에는 슬론과 같은 효용주의적 계산이 작동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 계산은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슬론의 계산에는 포함되지 않는 항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판단이 현장에서 실행되는 지점, 중간 책임자의 위치에서 발생하는 비용입니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조직 전체로 되돌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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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브랜드는 인간에게 무엇을 약속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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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AI 스타트업 AiCandy가 만든 가짜 광고, Energym.
광고 속 2036년, AI가 일자리의 80%를 대체한 세계. 인간은 돈도, 일도, 목적도 잃었고 남은 건 오직 ‘엄청난 시간’뿐이에요.
그때 등장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 Energym. 사람들은 피트니스 센터에서 자전거를 밟으며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고 돈을 법니다. 카피는 이렇게 끝나죠.
“Human-powered AI systems, fulfilling both the machine’s need for energy and the people’s need for purpose.”
AI는 에너지를 얻고, 인간은 ‘목적’을 얻는다. 하지만 그 목적이 AI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일이라면, 그건 더 이상 인간의 목적일까요?
국내 기사들은 “늙은 머스크가 나오는 웃긴 광고”로 다뤘지만, 해외에서는 ‘purpose(목적)’이라는 단어로 이 캠페인을 읽습니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할 때, 우리는 인간에게 어떤 진짜 목적을 돌려줄 수 있는가?” 이게 Energym이 던진 질문이에요.
AI가 일을 대신하고 시간을 돌려주는 시대, 고객은 묻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그 질문에 답하는 게 앞으로 브랜드의 진짜 경쟁력이 될 겁니다.
AI가 기능을 책임진다면, 브랜드는 목적을 책임져야 합니다. 고객이 상품을 사는 이유는 ‘효율’보다 ‘의미’로 이동하고 있거든요.
AI 덕분에 일이 줄어든 대신, 우리는 시간과 에너지를 돌려받습니다. 그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그 답을 설계하는 브랜드가 사람들의 하루를, 나아가 세계를 움직입니다.
“AI는 나 대신 일하지만, 이 브랜드는 나에게 ‘왜 사는가’를 알려준다.”
그게 바로 AI 시대의 새로운 브랜딩 문법입니다. 비록 AiCandy의 Energym은 가짜 광고지만, 그 안엔 아주 진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에, 브랜드는 인간에게 어떤 목적의 서사를 줄 수 있는가.”
어쩌면 앞으로의 브랜딩은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AI 이후에도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야기를 설계하는 일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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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마케팅 트렌드 전문 유투버 WLDO (Who Letta Dogs Out)의 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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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비틀기 - 부쩍 다가온 봄, 월요일의 노곤함을 깨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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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와 신을 부르는 두 곡, 내 안의 기원을 깨우는 아시아식 의식을 들어보세요. PM Kenobi의 「Haraboji & Aboji」로 제주–이쿠노–도쿄를 잇는 디아스포라의 숨결을, AOORA의 「Shiva Shivam」으로 시바의 탄드바가 가진 파괴와 축복의 리듬을 마주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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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Kenobi의 「Haraboji & Aboji (feat. Moment Joon)」는 제주에서 오사카 이쿠노를 거쳐 도쿄까지, 할아버지의 전쟁과 가난, 아버지의 이민과 차별, 그리고 손자인 래퍼 자신의 믿음과 혼란을 한 호흡으로 엮어내며, 힙합을 족보이자 증언록처럼 사용하는 다큐멘터리형 랩입니다. 건조하게 또박또박 내뱉는 목소리와 과장 없는 비트 위로, 돼지우리 냄새가 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재일 코리안 3세라는 경계적 정체성, 신앙에 대한 갈등이 영화의 롱테이크처럼 길게 이어져, 이 곡을 듣는 분들께서도 “나의 뿌리와 가족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트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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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ORA의 「Shiva Shivam (Shiv Tandav)」는 시바 신의 탄드바를 모티프로 삼아, 산스크리트 어구와 인도적 사운드, 강렬한 EDM 드랍을 결합해 하나의 의식 같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곡입니다. 기도문처럼 반복되는 보컬과 북소리 같은 리듬, 클럽 사운드에 가까운 전개가 겹치면서, 신을 향한 찬양과 무대 위 퍼포먼스가 동시에 터져 나오는 장면을 체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곡을 재생하는 순간, 단순히 K팝 한 곡을 듣는 것을 넘어, 파괴와 재생의 이미지를 몸으로 느끼는 현대식 만트라에 참여하는 느낌을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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