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맥도날드화
효율적이지만 획일적인 AI 언어가 퍼지고 있습니다
요즘 강연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수들이 갑자기 "meticulous(세심한)", "delve(깊이 파다)", "realm(영역)", "adept(숙련된)"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누군가 강연자들에게 "이런 단어를 써보세요"라고 권유한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정말로 그런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ChatGPT입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팀이 280,000개의 학술 강연 영상을 분석한 결과, ChatGPT 출시 이후 인간의 말하는 방식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AI가 인간의 창작물을 학습한다는 기존 인식을 뒤집는 발견입니다. 이제 인간이 AI의 말투를 따라 하고 있거든요.
언어의 전염병
"이번 발표에서는 cutting-edge(최첨단) 기술의 intricate(복잡한) 특성을 showcase하겠습니다."
이런 문장을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그럴듯해 보이는, 묘하게 과장된 느낌의 표현 말입니다. 연구진은 이를 "ChatGPT 특유의 언어 패턴"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과도하게 정중하고,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며, 필요 이상으로 화려한 표현을 구사하는 특성이죠.
문제는 이런 언어 패턴이 전염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280,000개의 강연 분석 결과, ChatGPT 출시 이후 강연자들이 AI 특유의 단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마치 새로운 방언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것 같은 현상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런 변화가 의식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강연자들은 자신이 AI의 말투를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그냥 "좀 더 학술적으로 들리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선택했을 뿐이죠.
새로운 행위자의 등장
20세기 후반,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사회가 인간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나 도구, 알고리즘 같은 비인간 존재도 사회적 행위자로 작동한다는 이론입니다. 당시에는 추상적인 이론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ChatGPT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의 언어 습관을 형성하고, 사고 방식을 바꾸며, 심지어 창작의 방향까지 결정하는 적극적인 행위자입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동료처럼 우리 옆에서 "이렇게 말해보세요"라고 속삭이고 있는 겁니다.
이런 변화는 광고 업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2025년 칸 라이언즈 광고제에서 틱톡, 메타, 구글은 AI 기반의 동영상 자동 제작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샘 올트먼은 "AI가 마케팅의 95퍼센트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죠.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AI가 제작한 광고를 매일 보고 있고, 그 광고의 카피를 무의식중에 따라 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맥도날드화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화"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의 획일화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효율성, 계산 가능성, 예측 가능성, 통제를 추구하면서 인간적인 요소들이 사라진다는 이론입니다. AI 언어의 확산은 언어의 맥도날드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ChatGPT의 언어는 완벽하게 예측 가능합니다. "noteworthy(주목할 만한)", "groundbreaking(획기적인)", "sophisticated(정교한)" 같은 단어들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부품처럼 반복됩니다. 개성 있는 표현이나 지역적 특색, 개인적 문체는 점점 사라지고 있죠.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획일화가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방식으로 말하고 쓰기 시작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비슷한 틀 안에서만 나오게 됩니다. 언어의 다양성 감소는 곧 사고의 다양성 감소를 의미합니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딜레마
Z세대와 알파 세대에게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AI는 선생님이자 친구입니다. 숙제를 도와주고, 고민을 들어주며, 창작 활동을 함께하는 존재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AI의 언어 패턴을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AI 이전의 언어"를 경험해볼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할머니의 사투리, 아버지의 은어, 친구들만의 특별한 표현들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대신 모든 상황에서 통용되는 "표준화된 AI 언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창작의 새로운 정의
이런 변화 속에서 창작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창작이었다면, 이제는 "AI와 협업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창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협업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AI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인간의 창작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 겁니다. "베낀다"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어요. 아주 많은 소스를 아주 잘게 썰어 베끼면 무엇을 베꼈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저항과 적응 사이에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의 언어 침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AI의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의식적으로 저항하며 우리만의 언어를 지킬 것인지 말입니다.
몇 가지 가능한 방향이 있습니다. 먼저, AI 언어의 특성을 이해하고 의식적으로 다양한 표현을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meticulous" 대신 "꼼꼼한", "delve" 대신 "파고들다"처럼 우리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죠. 또한 지역 방언이나 개인적 표현을 의도적으로 보존하고 사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할머니의 사투리나 친구들과의 은어는 대체할 수 없으니까요.
새로운 규칙이 필요한 시대
결국 우리에게는 새로운 규칙이 필요합니다. '창작'의 정의부터 다시 세워야 하고, '표절'의 정의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작권을 뛰어넘는, 창작물에 대한 새로운 권리 개념도 필요하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AI와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새로운 관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AI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언어를 만들어가는 동반자입니다. 문제는 그 동반자가 우리보다 훨씬 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죠.
어쩌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와 함께 언어를 만들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언어가 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들지, 아니면 더 획일적으로 만들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